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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슈

"소중한 생명 살리고 공혈견 구하는 헌혈 영웅견 아시나요"

 

 

【코코타임즈】 응급중환자의학과에는 수혈이 필요한 환자들이 빈번하게 내원한다. 최소 한달에 4~5번 이상은 심한 빈혈, 출혈, 특수 혈액성분 부족 등으로 수혈을 진행하고 있다.  

 

피가 부족한 상태에서는 저산소증으로 쇼크가 발생하거나, 지혈이 되지 않아 심각한 출혈이 생길 수 있다.  

 

이 때 수혈이 적시에 이뤄져야 환자가 살 가능성이 높아진다. 수혈은 그야말로 생명을 살리는 '응급의학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자정쯤이었을까. 그날도 입원 중인 환자 때문에 나를 비롯한 응급중환자의학과 스태프들이 대부분 퇴근하지 못하고 남아있었다.  

 

다급하게 응급벨을 누르며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어떤 여자분이 축 늘어진 몰티즈(말티즈)를 안고 울고 계셨다. 한눈에 봐도 사망 직전의 상태였다.  

 

눈처럼 하얗게 늘어져있는 작은 아이. 하얗다 못해 푸르스름하게 보이는 점막들. 의식없이 거의 끊어져 가는 호흡.  

 

우리는 신속하게 바이탈을 체크하고 산소를 연결했다. 환자의 PCV(혈액중 적혈구가 차지하는 퍼센트)도 확인했다. PCV 4%. 건강한 강아지의 PCV를 보통 37% 이상이라고 볼 때 몸에 적혈구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이것저것 고려하고 검사할 시간이 없었다. 그야말로 1분, 1초가 급한 상태였다. 한명은 보호자에게 설명을 하고 동의를 받았다.  

 

다른 스태프들은 환자를 중환자실(ICU)에 옮기고 응급처치를 한 뒤 최대한 빠르게 수혈을 준비했다.  

 

수혈을 시작하고 30분쯤 지났을까. 하얗기만 하던 환자의 몸에 약한 핑크빛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눈도 껌벅거리고 고개도 들고. 4시간 후에는 일어나서 코를 킁킁거리며 두리번거렸다. 마치 미용하러 온 아이처럼,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런 에피소드는 응급중환자의학과 수의사들에게는 드문 일이 아니다. 너무나 익숙하고 예상할 수 있는 상황들이다.  

 

만약 저 상황에서 우리에게 혈액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안타깝게도 환자는 30분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수혈, 특히 혈액이 얼마나 중요한지 매일같이 실감한다. 이 혈액을 구하기 위해서 건국대학교 부속 동물병원에서는 반려견 헌혈 캠페인에 앞장서고 있다.  

 

2019년에는 현대자동차와 함께 '아임도그너(I'm DOgNOR) 헌혈카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4년째 헌혈프로그램을 운영해 헌혈을 알리고 헌혈을 통한 윤리적인 수혈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혈액의 필요성을 넘어서 이제는 혈액이 어떻게 공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혈액 공급을 위해 사육되는 공혈견들의 경우, 한 때 이슈가 됐던 사육환경이나 위생 등의 부분이 많이 개선됐다고 한다. 하지만 동물 윤리적인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우리의 목표는 헌혈의 중요성을 널리 알려 최대한 헌혈을 통해 혈액을 수급하고, 더 이상 공혈견이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올 상반기에는 건국대학교와 현대자동차가 전국적인 규모의 반려견 헌혈센터인 '아임도그너'(KU I'M DOgNOR 헌혈센터)를 설립한다.  

 

이제까지 헌혈을 한 수많은 반려견과 보호자들 중에서 헌혈이 끝나고 인상을 쓰거나 불쾌함을 내비쳤던 분들은 단 한 분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꽤 긴 시간을 기다리고 고된 과정을 견뎌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지친 기색없이 기쁘고 보람된 모습이었다.  

 

다들 말로 표현하시지는 않았지만 표정으로 '자랑스러운 내 새끼'라는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이 SUPER HERO(우리는 헌혈견들을 헌혈영웅 'SUPER HERO'라고 부른다)가 우리집 아이예요!'라는 자부심이 뿜어져 나왔다.  

 

수의사들도 마찬가지다. 수혈을 하기 위해 밤을 새고 아침이면 피곤함에 좀비가 돼서도 배시시 웃는다. "그래도 어제 별꽃이가 헌혈을 해줘서 다행이에요"라고 말해주는 수의사들. 그들에게서도 피곤과 짜증보다는 안도와 뿌듯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단순히 피를 공급하는 것을 넘어서는 블러드 도네이션(BLOOD DONATION·헌혈). 받는 사람에게는 생명을, 주는 사람에게는 나눔의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헌혈. 더 많은 슈퍼 히어로들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도록 나와 우리의 역할을 다시 다짐해본다.  

 

한현정 건국대학교 동물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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