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타임즈】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면서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물건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니… 선언적 의미도 좋지만 유럽처럼 별도 법률을 먼저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동물에게 갑자기 인격을 부여하면 그 해석은 결국 사람이 할텐데 소송이 늘어나고 혼란만 가중될까 걱정이네요."
법무부가 지난 19일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마련해 입법예고에 들어간 것과 관련해 업계에서는 공감한다면서도 현장의 혼란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막연히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고만 정의하고 이를 대체할 개념 정립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앞서 법무부는 개정 취지에 대해 "그동안 동물학대 처벌이나 동물피해 배상이 충분하지 않은 근본적인 이유가 동물이 법체계상 물건으로 취급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었다"며 "이에 동물과 사람을 막론하고 생명이 보다 존중받는 사회를 견인하기 위해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신설하는 법안을 마련한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 일상인 행동, 요즘엔 학대…현실 감안해야"
21일 업계에 따르면 동물의 법적 지위가 바뀌는 것이 필요하긴 하지만 후속 법률을 마련하기까지 넘어야할 산이 많다.
정서상으로는 동물을 생명으로서 존중한다는 의미가 긍정적이지만, 현실을 감안했을 때 동물학대 소송보다는 일상생활에서의 소송이 늘어나는 등 혼란이 커질 수 있어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법 개정 이유로 동물학대를 얘기했는데 수치로만 동물학대가 늘어났다고 할 것이 아니라 내용을 봐야 한다"며 "예를 들어 목줄을 채워 마당에 묶어둔 개의 경우 예전에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지만 요즘엔 학대라고 해서 고발 당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공감은 하지만 지나친 의인화로 소송 늘까 우려도
그러면서 "때때로 잔혹 범죄도 있지만 달라진 인식에 다소 과하게 고발 당하는 경우도 생겨났다"면서 "숫자만 갖고 동물학대가 급증하고 있지만 기소율은 절반도 안 된다는 해석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요즘엔 특히 개, 고양이의 경우 가족을 넘어 지나친 의인화로 사람보다 더 대우 받는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동물에게 인격까지 부여된다면 자칫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보호자가 기분이 나쁘면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
법무부가 '물건이 아닌 동물'을 전체 동물이라고 밝힌 것과 관련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산업동물 업계 관계자는 "소의 경우 뒷발에 차여 사람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평소에도 조금 거칠게 다룰 수도 있다. 이를 동물학대라고 규정할 건가"라며 "또 전통적으로 소, 돼지, 닭 등은 매매를 하기 때문에 물건이자 재산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개, 고양이 사료에는 닭고기 등이 들어가는데 물건이 아니면 뭐라고 정의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산업동물은 어떻게? 반려동물 개념 재정립해야"
반려동물 업계 관계자도 "동물이 물건이 아니라는 데는 공감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반려동물 입양이 어려워지지 않았으면 한다"며 "이미 동물보호법에서 동물학대 처벌이 강화돼 있고 문제가 생기면 형법상 재물손괴보다 동물보호법의 적용을 받는다. 실질적으로 업계와 소비자, 동물로 인해 생기는 갈등과 관련한 소송이 늘어날텐데 너무 한번에 바꾸려 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우려했다.
법무부가 향후 반려동물의 강제집행 대상 배제도 논의 중이라고 밝힌 것과 관련해 반려동물의 경계를 어디까지 할지도 관건이다.
업계 관계자는 "독일에서도 강아지 보유세를 걷고 동물을 압류해서 다른 양육자를 찾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 반려동물을 압류하는 사례는 거의 없기 때문에 실효성이 크지 않다"며 "요즘 능력 안 되면 개, 고양이 키우지 말라는 분위기도 있는데 빚을 갚지 못할 정도로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이 동물을 제대로 키울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반려동물 강제집행과 관련해 한두환 변호사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한 반려동물은 개, 고양이, 토끼, 페럿, 기니피그, 햄스터 6종"이라며 "반려동물의 경계가 다소 모호한 측면이 있다. 종으로 나누기보다 보호자와 유대 관계, 교감 정도를 고려해 반려동물의 개념을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관련법 줄줄이 바꿔야…국민 공감대 형성 필요"
국내에서 동물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는 속도가 따지고 보면 '선진국보다 빠르다'며 법 개정을 너무 성급하게 추진하기보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심준원 펫핀스 대표는 "민법에서 '물건이 아니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보험업법, 상법, 형사법 등 줄줄이 함께 바꿔야 할 후속 조치가 많다. 조항 하나 바꾸는 것도 쉽지 않은데 과연 법 개정이 가능할지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도 있다"며 "법률이나 제도적 혼선도 있지만 국민 전체의 문화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법 개정이 안 될 가능성이 높으니 신중하게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법조계에서는 향후 법 개정을 위해 계속적으로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대한수의사회 정관개정특별위원장인 소혜림 변호사는 "개정안에서 동물은 물건이 아니지만 물건에 준용한다고 한 것은 법 적용의 공백을 피하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라며 "장기적으로 보면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대원칙에 따라 다른 법률에서 이에 합당한 방향으로 대대적인 개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예를 들어 지금까지 동물을 무단으로 데려간 경우 절도죄에 불과했다. 하지만 미성년자를 유괴하면 약취,유인죄가 적용되듯 동물의 지위에 합당한 규정이 신설돼야 할 것"이라며 "부부가 반려동물을 함께 키우다 이혼하는 경우도 향후 재산분할의 대상이 아니라 자녀의 경우와 유사하게 양육권을 다투는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news1-100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