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우리 일상 속으로 성큼 들어와버린 개와 고양이.
이들은 우리 사회 갈등(葛藤)의 씨앗이 될까? 아니면 우리 문화 성숙(成熟)의 마중물이 될까?
우리 시대의 그 화두를 풀어보려 건국대 캠퍼스타운사업단이 ‘반려인문학 강의’를 열었다.
7월 말부터 연말까지 이어지는 22강짜리 레이스. 그 얘기를 시리즈로 엮어본다.
1. 반려의 삶, 그리고 인문학
지금의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은 바로 명칭의 변화다.
'애완(愛玩, Pet)'이라 불리던 것이 어느새 '반려( 伴侶, companion)'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실 '반려동물'(companion animal)이란 말은 서구에서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노벨상 수상자로,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동물행동학자 콘라드 로렌츠(Konrad Z. Lorenz)가 1983년 한 심포지엄에서 처음 제안한 것.
'이전엔 '좋아해서 갖고 노는' 상대였던 이들이 이젠 감정이 소통하는. 그래서 '따르고 벗하는' 존재로 그 가치가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을 통찰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 강아지 고양이들은 마당에서 집안으로 거처를 옮겼고, 시시 때때 사람과 눈 맞추고 입 맞추는 사이로 그 관계도 변했다.
이들을 '펫팸(Pet+family)족', '펫밀리(Pet+family)'라 부른다.
한 발 더 나아가 '주인(lord)'이 '집사(servant)'로 위치가 역전(?)된 경우도 많아졌다.
7월 30일, '반려인문학' 첫 번째 강의를 맡은 임세진 선생(건국대 국어국문학과 박사 수료)도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며 우리들 삶엔 수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고 말했다.
당장 마음의 안정부터 우울증이나 치매의 치유, 가족 간 대화의 복원이 일어난다.
또 강아지 유치원부터 펫카페 펫호텔 펫시터 등 수많은 신종 직업이 생겨나고, 동물을 소재로 한 미술 영화 책이 쏟아진다.
개인의 삶부터 사회의 양상까지 그 변화의 폭과 넓이는 생각 이상으로 크다.
특히 혼자 사는 이들에겐 외로움을 잊게 해주는 특별한 존재고, 믿고 의지하던 아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마음 깊은 상처와 함께 '펫로스증후군'(Pet Loss Syndrome)을 불러오기까지 한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관계가 달라졌다는 데 있다."
인간은 이성과 감성을 지닌 우월한 존재고 동물은 그렇지 못한 열등한 존재라고 나누던 우리 인식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또 "그런 변화의 뿌리엔 생명과 환경의 가치를 새롭게 보려는 우리 문명사의 큰 전환과 연결돼 있다"고 했다. 자연의 모든 생명체가 나름의 목적을 갖고 있고, 그에 따라 각 존재는 다른 존재에게 그 생존을 의존하고 있다는 것.
그런 차원에서 동물의 위치는 더욱 특별한다.
유명한 동물학자 제인 구달(Jane Morris Goodall)은 1960년대 아프리카 침팬지 보호구역에서 자연 그대로의 동물들을 관찰함으로써 이들도 조직 위계를 갖춘 사회적 동물이고, 도구를 사용할 줄 알며, 나름의 언어와 소통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인간만이 이성과 감정을 갖고 있다는 기존의 신념이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는 것.
이와 별도로 호주의 철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1975년 '동물해방(Animal Liberation)'을 발표하며 "도덕적으로 고려할 대상에서 동물을 제외하는 것은 그 옛날, 여성과 흑인을 제외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동물을 비롯해 고통을 느끼는 모든 존재는 동등한 도덕적 지위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우리 모두의 행복 총량을 늘리기 위해선 그에 반하는 고통을 줄여야 한다는 것. 이는 나중에 "가축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복지형 축산으로 동물복지를 증진시키자"는 '동물복지론'의 뿌리가 된다.
또 '동물권리론'을 주창한 미국 철학자 톰 레건(Tom Regan)은 "동물도 고유의 존재 가치를 갖는 만큼 동물, 특히 몇몇 포유류는 그런 점에서 존중받아야 할 권리를 갖는다"고 설파했다. 사람에게 인권이 있듯 동물에게도 '동물권(animal rights)'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이어 굿패스터(Kenneth Goodpaster)는 "(식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이미 도덕적으로 배려 받을 자격이 있다"는 '생명원칙론'을 내걸었다. "동물을 학대하는 것은 결국 나중엔 인간을 학대하는 것으로 습관화된다"는 견해는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들을 거쳐 현대의 환경윤리론은 "각각의 생명체는 자신을 보존하고 고유의 방식으로 '생명 목적'을 추구한다"는 폴 테일러(Paul W. Taylor)의 '생명중심론'으로 이어진다. 모든 생명체는 성숙과 종족보존의 '생명 목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임 선생은 이를 통해 "인간만이 우월하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이는 인류 중심적인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람과 동물, 반려인과 비반려인, 인간과 자연 등 모든 생명체들이 행복한 공존, 행복한 동행을 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라고 묻고 "바로 그것이 이번 '반려인문학 강의'의 가장 근본적인 과제"라고 말했다.
누군가와 어떤 식으로든 손잡지 않고 지금껏 살아남은 생명은 아직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