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병원을 처음 시작하면서 생각했어요. 동물들도 사람처럼 암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 다행히 지금 어느 정도는 목표를 이뤘네요."
헬릭스동물메디컬센터 황정연 대표원장은 국내 최초로 대학병원에서 사용하는 장비와 동일한 방사선치료장비를 도입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들은 병원에 갈 때 불안감이 있잖아요.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물들도 편안하고 보호자들도 불편하지 않도록 전직원 친절 서비스는 기본이고 병원 인테리어도 하나하나 신경 썼죠."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다는 황 원장은 지난 2010년 당시 국내 최대 규모 동물병원인 헬릭스동물메디컬센터를 개원했다. 그리고 동물들도 언제든지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연중무휴 24시간 진료를 도입했다. 동물들에게도 최고수준의 의료복지를 누리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서울 서초본원을 포함해 송파분원과 일산분원은 물론 최근 중구에 개원한 동물암센터까지 모두 치료가 쉽지 않은,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동물들을 배려한 것들. 사실 그가 수의대를 졸업하고 20여년전 처음 동물병원에서 임상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강아지, 고양이가 병에 걸리면 제대로 치료받기 힘들었다. 치료할 수 있는 의료기기도 없었을 뿐더러 동물병원에 와서 치료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였다. 당시만 해도 동물은 '가족'보다는 그저 귀여운 '인형'에 가까웠다.
황 원장은 "한번은 길을 가는데 떠돌이개 한 마리가 통증이 있는지 소리를 지르며 옆을 지나갔다"면서 "얼핏 봐도 눈에 띌 정도로 배 아래 쪽으로 큰 혹 하나가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종양이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는 "지금은 이렇게 동물 암도 치료가 가능해졌지만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동물들을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면 꼭 치료해주고 싶다"며 "암은 조기에 발견하면 충분히 치료할 수 있다. 그래서 동물도 건강검진이 필요하다. 동물은 이제 일찍 떠나보낼 수 없는 가족이지 않나"라고 강조했다.
헬릭스동물메디컬센터를 방문하면 리트리버 종의 강아지를 볼 수 있다. 황 원장이 직접 키우는 반려견 '망고'다. 병원 호텔엔 여러 마리 고양이들도 함께 산다. 직원들이 데려와 보살피고 있는 길고양이들. 그는 "여기 강아지, 고양이들은 행복한 거다. 아프면 바로 치료를 할 수 있으니까. 망고는 눈 위에 종양이 생겨서 수술을 한차례 하기도 했다"며 반려견을 향해 애정 어린 눈빛을 보냈다.
◇ "전문성으로 승부…1차 의뢰병원과 협진이 최우선"
헬릭스동물메디컬센터는 '2차진료 동물병원'이다. 동네의 1차진료 동물병원에서 하는 백신 접종, 미용 등을 하지 않는다. 중증 질환을 가진 동물들이나 응급치료가 필요한 동물 등을 1차병원으로부터 의뢰받아 진료를 한다. 황 원장은 "동물병원이 무슨 '2차병원'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동물 진료도 전문성이 요구되는 시대"라고 말했다. 장비부터 최첨단을 사용했다. 헬릭스동물메디컬센터는 개원 이후 국내 최초로 동물 진료를 위한 1.5T MRI(자기공명영상) 및 16CH MDCT(다중채널컴퓨터단층촬영)를 도입했고 지난해에는 160CH 고성능 CT를 들였다. 전문 의료진이 상주해 최첨단 장비로 동물들을 진료한다.
그는 응급중환자 의료센터에 대해 "호흡에 갑자기 문제가 생겨 심폐소생술이 필요하거나 다양한 응급질환이 발생했을 때 최상의 진료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며 "의뢰병원의 환자가 응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 픽업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패혈증, 신부전 등 내과질환을 진료하는 중환자실에 대해서는 "현대화된 기계와 숙련된 의료진이 연중 24시간 근무하는 체계가 확립돼 있어 급변하는 환자 상태에 맞춰 조기에 최적의 치료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대형견을 위한 입원실, 고양이 전용 입원장 및 전염병 격리실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전부터 수술실도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창문을 만들었다. 요즘같이 동물들도 의료사고가 법적 분쟁으로까지 이어지는 일이 다반사인 상황에서 보호자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세심한 배려였다.
가장 큰 자부심은 동물암센터다. 암센터에 도입한 방사선치료장비는 가격만 수십억원. 그동안 국내에서 수술적 접근이 힘들어 치료가 한정적이었던 비강 종양, 뇌종양 등 체내 심부종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황 원장은 "최근 암센터에서 뇌에 종양이 생긴 강아지가 방사선치료를 받고 완쾌됐다"며 "보호자가 '걱정을 많이 했는데 자식같은 강아지를 진료해줘서 고맙다'고 빵을 사다주셨다. 수의사로서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2차병원의 경우 보호자와 환자와의 신뢰도 중요하지만 같은 수의사끼리 협진도 필요하다. 그는 "1차병원에서 환자 의뢰를 받으면 예약, 이송, 촬영 당일 주요 소견을 전화 보고하고 종합정밀보고서를 24시간 안에 이메일로 보낸다"며 "우리 병원이 믿음을 줘야 1차병원도 보호자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동물은 가족, 수의사는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는 사람"
동물병원 시설과 치료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보호자들 입장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아무래도 비용이다. 동물등록이 아직 정착되지 않아 반려동물 개체수를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다보니 시중에는 소비자들이 만족할 만한 펫보험이 별로 없다. 사람과 같은 의료보험제도도 없을뿐더러, 수의사들은 동물 치료에 쓰이는 약을 약국에서 소매가로 비싸게 사는 경우가 많다. 의료기기 사용률도 사람만큼 수요가 나오지 않다보니 한번 사용할 때 사용료가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황 원장은 "동물은 사람처럼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아픈지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검사를 해야만 진단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부분에서 보호자들은 동물병원의 진료비가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싸다고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으로 치면 동네 병원에 가서 간단한 문진과 내복약 처방만 받는 경우와 대학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고 합당한 처치를 받는 경우를 비교해 보면 저희들을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수많은 인력들이 상주하고, 성능 좋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대학병원에서는 의료보험이 적용되더라도 병원비가 많이 나올 수 밖에 없지 않겠어요?" 황 원장은 이를 동물병원에 대입해 보면 보호자들도 어느 정도는 수의사들을 이해해 줄 것으로 믿는다.
"동물은 이제 가족이잖아요. 저희는 그 가족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사람들이고요. 말로만 가족이 아니라 주변 인식들이 함께 개선이 돼야 수의사들도 진료에 집중할 수가 있습니다. 동물의료복지 수준도 올라갈 수 있고요. 사람의료복지가 발전하기까지 정부의 지원과 정책 등이 있었듯이 동물의료복지 발전을 위해서도 관련 정책이 조속히 마련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그는 이어 "지금은 성숙한 반려동물 문화가 정착되기까지 과도기라고 많이 얘기합니다. 수의사도, 보호자도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어느 순간 동물과 함께 모두가 행복한 순간이 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