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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건사... 주사도 못 놓는, 반쪽짜리 국가자격증?

【코코타임즈】 국가자격 동물보건사 첫 시험이 내년 2월 26일로 잠정 확정됐다. 

 

이에 따라 동물보건사 양성기관들에 대한 평가 인증(9~11월) 절차부터 시험 시행 공고(11월), 특례대상자 교육(12월~내년 1월), 응시원서 접수(1월), 시험 및 합격자 발표(2월), 자격증 교수(3월) 등 관련 스케줄도 구체적으로 나왔다. 

 

 

 

하지만 동물보건사 제도가 현장에서 ‘전문인력’으로 제자리를 잡기 위해선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무척 많다. 자격증 시험부터 제도 운영까지 곳곳에 함정과 난제가 도사리고 있어서다.

 

너무 제한적인 업무 범위... 간단한 주사나 채혈도 못해


먼저 동물보건사가 할 수 있는 업무 범위가 기대와 달리 너무 제한적이다. 

 

 

현행 수의사법에 동물보건사는 “동물병원 내에서 수의사의 지도 아래 동물의 간호 또는 진료 보조 업무에 종사”한다고 돼 있다. 

 

여기서 ‘동물병원 내에서’가 문제다. 수의사 지도 아래에 있다 하더라도 소 돼지 닭 등을 키우는 축산농장으로 출장이나 왕진을 갈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동물보건사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전국 4천500여개 동물병원들 중에서 강아지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전문으로 진료하는 3천여곳으로 한정된다. 취직할 수 있는 자리가 확 줄어드는 셈이다. 

 

또 이번 시행령 시행규칙엔 동물보건사 업무 범위를 크게 두 가지로 제한해 두었다. 그 중 하나는 “동물의 관찰, 체온 심박수 등 기초 검진자료의 수집, 간호 판단 및 요양을 위한 간호”다. 

 

지난 4월 입법예고했을 때 “동물의 소유자 또는 관리자에 대한 자료 수집, 동물의 관찰, 기초 건강검진 등 동물의 간호”라고 했던 것을 이렇게 바꿨다. 병원에 와서 하는 기초 검진에서조차 채혈은 안 되고, 체온과 심박수 측정만 할 수 있도록 한 것. 

 

또 다른 하나는 “약물의 도포, 경구 투여, 마취 및 수술의 보조”다. 즉 동물간호사는 약을 바르거나 먹이는 것만 할 수 있지, 간단한 주사조차 놓을 수 없도록 해놓았다. 

 

입법예고 당시 내걸었던 “보정, 투약, 마취 및 수술 보조”에서 동물 몸을 잡아준다는 '보정'을 넣으며 정작 중요한 ‘투약’ 항목은 아예 빼버렸기 때문. '투약'의 한 방법 중에 주사가 들어있다는 이유다. 

 

대한수의사회가 줄곧 고집해왔던 “동물보건사의 ‘침습(浸濕)행위’는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요구를 정부가 수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반면, 사람 병원 간호사는 의사의 지도 감독 아래 채혈이나 주사 모두 할 수 있다.

 

이름만 '동물' 보건사... 일은 '반려'동물만


동물보건사 제도와 관련, 대한수의사회는 그동안 “동물보건사는 ▲반려동물에 한해 ▲동물병원 공간 내에서 ▲비(非)침습적인 보조업무만 수행한다”는 3대 원칙을 견지해왔다. 

 

 

이번 시행령과 시행규칙에도 수의계의 이런 입장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동물병원 내에서’로 규정된 업무 범위 탓에 검역과 출장 진료, 왕진 위주인 산업동물쪽 병원엔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 

 

'동물'보건사 자격증을 갖고 있더라도 취직 자리는 반려동물을 위주로 한 동물병원에만, 그것도 극히 일부 한정된 업무만 맡을 수 있다는 얘기. 

 

"겨우 그 정도 업무나 하려 대학을 몇 년씩 다니며 '국가' 자격증을 딸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가 동물보건사 준비생들 카페들에서 터져나오는 이유다. 

 

동물보건사 양성 대학의 한 교수도 “병원 밖에서 이뤄지는 반려동물 자가진료를 원천 금지시키기 위해 동물보건도 침습 행위는 엄격히 제한하겠다는 수의계 입장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라면서도 “하지만 임상 현장에서 이게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필요한 경우 간단한 주사나 채혈 정도는 보건사가 해주는 것이 동네 동물병원 입장에선 오히려 효율적일 수 있어서다. 요즘 동물병원에서 많이 쓰는 엑스레이, 초음파, CT, MRI 등 방사능 의료기기는 또 어떻게 하느냐도 애매하다. 

 

“사람 병원의 간호사, 간호조무사, 전문간호사 등이 담당하는 업무와 유사한 일들을 동물병원에선 동물보건사가 맡아야 할텐데, 이렇게 다 막아버리면 그게 무슨 ‘동물의료 전문인력'이냐”는 얘기도 그래서 나온다. 

 

수의사들 권한을 지켜주겠다는 업무 제한이 거꾸로 동물병원과 수의사들 굴레가 될 가능성도 있다. 만일 환자가 많거나, 또 어떤 사정 때문에 수의사가 보건사에게 주사나 채혈을 할 것을 시켰다면 이는 양쪽 모두 범법자를 만들 수 있어서다. 

 

보건사는 무면허 의료행위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고, 이를 시킨 수의사는 불법행위 교사범으로 처벌될 것이기 때문.

 

수의사 면허 가진 지도교수, 어디까지 가르칠 수 있나


지난 4월 입법예고 당시 정부는 “평가인증을 받은 양성기관에서 수의사 자격을 가진 지도교수가 학생들 전공분야 실습을 할 수 있도록 진료행위를 허용”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이 조항은 그사이 없어졌다. 농식품부는 “시행령의 근거가 될 수의사법에 양성기관 진료행위에 대한 위임 조항이 없어 시행령 개정안에 이 대목을 뺄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즉, 정부는 동물보건사에 대한 수준 높은 실습교육을 위해 일선 동물병원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재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 했으나, 현행법으론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주무부처에서 관련 법규 체계조차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느냐"는 비아냥이 터져 나올 수도 있는 대목. 

 

어쨌든 지금대로라면  대학이 아무리 일반병원과 똑같은 시설과 장비를 구축하더라도 환자가 아닌 멀쩡한 강아지 고양이를 데려다 관찰하고 진료하는 시늉만 해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만, 일반 수의사가 대학 캠퍼스 일부 공간을 임대해 동물병원을 차린 후 학교와 실습교육 협약을 맺어 진료와 학생들 실습을 겸하게 하는 경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2월 첫 시험, 정말 가능할까


첫 시험이 내년 2월로 결정이 나면서 내년초 졸업하는 학생들부터는 시험에 응시할 기회를 얻게 됐다. 이 시험에 응시할 졸업 예정자들만 전국에 8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동물병원 근무 경력이 있어 120시간 실습 교육과정만 거쳐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특례대상자'도 전국에 2천명을 넘는 것으로 축산된다. 시험 응시 예상인원만 1천명~1천500명은 넘을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다. 

 

농식품부 이동식 방역정책과장도 “동물보건사 양성기관 평가 인증 등 관련 일정이 차질이 없다면 (어떻게든) 2월 중엔 첫 시험을 치른다는 것이 현재의 갖고 있는 우리의 목표”라고 밝혔다. 

 

하지만 내년 2월 시험을 시행하는데 가장 큰 복병은 ‘동물보건사 양성기관 평가 인증’ 절차.  

 

정부도 9일 동물보건사 양성기관 평가인증 온라인 설명회를 열고,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내달 8일까지 신청을 받고, 11월까지는 신청기관별로 서면평가와 방문평가까지 마친다는 스케줄도 내놨다.  

 

현재 동물보건사를 양성하는 기관은 2~4년제 대학과 평생교육기관의 반려동물 관련 학과들을 합해 30개를 훌쩍 넘는다. 동물보건사대학교육협회(동교협)에 소속된 학교와 기관만 29개. 거기다 아직 협회에 가입하지 않았거나, 내년부터 신입생을 모집하는 곳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문제는 주어진 3개월 안에 이들에 대한 평가 인증 작업을 완료할 수 있느냐는 것.  

 

조직과 운영, 교육과정, 학생, 교수, 교육시설 및 실습기자재 등 5개 영역에서 모두 35개 항목을 평가한다.여기서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점수를 얻어야 인증을 받게 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농식품부와 인증원은 "몇 개가 됐든 공정하게 평가해 충분한 자격이 있는 양성기관에 인증을 주겠다"는 방침이지만, 그래서 실제 현장에선 졸속으로 진행될 확률도 높다.  

 

동물병원 근무 경력이 있는 특례대상자들에 대한 120시간 특별 실습교육 수요까지 감안하면,  이번 인증 획득에 사활을 걸 학교도 적지 않다. 평가가 너무 엄해도 문제, 너무 후해도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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