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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민법 개정으로 달라질 세상



【코코타임즈】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민법 개정안 신설 제98조2의 1항)
 

 

너무나 당연한 듯한 이 조항이 우리나라 법률에 명시화되는데 무려 60년이 넘게 걸렸다. 동물의 법적 지위를 '물건'이 아닌, 그래서 '생명'으로 인정하는 민법 개정안을 법무부가 19일 입법 예고했기 때문. 지난 1958년 민법이 제정된 이후 63년만이다. 

 

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동물은 이제 “물건이 아닌, 그렇다고 사람도 아닌” 제3의 법적 지위를 갖게 된다. 지금처럼 보호자의 '소유물'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반려동물 역사는 짧지만, 이제부터 동물의 권리, 즉 '동물권'(動物權)에 대한 대변화가 시작된 셈이다. 

 

이에 대해 이진홍 건국대 교수(반려동물법률상담센터장)는 20일 "동물의 법적 지위 상승에 한걸음 나아간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 평가하고 "앞으로 민형사상 손해배상이나 학대에 대한 처벌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는 "세계적인 추세에 따르는 일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동물학대 하면 큰 코 다친다


동물학대나 폭력으로 강아지 고양이를 죽게 만들어도 지금까지는 실형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재판까지도 잘 안 갔지만, 겨우 갔다 하더라도 대개는 '재물손괴죄'로 벌금형에 그쳤다. 남의 소유물에 훼손을 입혔다는 정도. 

 

 

실제로 지난 2016년 8월, 다른 집 강아지를 건물 옥상 아래로 집어던져 죽인 한 사람에게 법원은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그리고 “시가 5만원 상당 재물의 효용을 해했다”는 판결을 남겼다. 

 

 

그나마 '동물보호법'이 수차례 개정되면서 동물학대에 대한 처벌의 근거들이 생겨났다. 

 

지난해 벌어진 '경의선 숲길 고양이 살해사건'. 고양이를 바닥에 수차례 내동댕이치는 등 잔인하게 죽인 학대행위에 대해 재판부는 실형 6개월을 선고했다. 이례적인 실형이었다. 재물손괴죄에다 동물학대를 금지한 동물보호법 위반을 함께 적용한 것. 

 

또 지금까진 피학대 동물의 소유권 박탈, 즉 학대하는 가해자와 반려동물을 분리하는 조치가 어려웠다. 하짐나 이젠 학대자로부터 격리, 보호조치하는 것이 한결 쉬워진다. 설령 실형을 살고 나왔다 하더라도 반려동물을 가해자에 돌려주지 않도록 하는 판결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법무부는 이에 대해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는가와 생명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 동물 학대에 대한 처벌 수위나 피해 보상 수준이 같을 수 없다”면서 “이번 법안은 새로운 제도와 추가 법안을 만들 수 있는 ‘물꼬’를 터주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민법 개정은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를 반영한 것"


이런 흐름은 '동물권'에 대한 우리 사회 인식의 변화와 관련이 깊다. 

 

 

벌써 1천500만명이 반려동물을 '또 하나의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서다. 게다가 1인 가구, 노령인구가 늘어나면서 반려동물은 때때로 “다른 식구들보다 더 살가운 가족”도 된다. 

 

해외의 경우, 헌법에 국민의 동물보호 의무를 명시하고 있는 나라도 있다. 스위스와 독일 같은 서유럽은 물론 동유럽 볼리비아, 남미 에콰도르가 그렇다. 

 

또 오스트리아 프랑스도 법률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고, “감각을 지닌 생명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생명이 있는 특별한 존재”인 만큼 그에 따른 지위와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지난 2018년 12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89.2%가 ‘물건과 동물을 구별해야 한다’고 응답하는 등 사회적으로 동물을 보호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판단도 한몫 했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이번 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우리나라 법 체계에서 동물의 지위는 크게 달라지게 된다. 민법이 다른 법률의 근거가 되는 '기본법'의 하나인 만큼 여러 관련법률들에도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이나 법원 판결 등에서도 다양한 변화가 예상된다. 

 

 

법무부도 "사법(私法)의 기본법이라는 '민법'의 지위를 고려할 때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는 조항이 신설됨으로써, 동물보호가 강화될 것"이라면서 "또 우리 사회가 동물과 사람을 막론하고 생명을 보다 존중하게 됨으로써 사회적 공존의 범위가 더욱 확장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당장 민사법이 바뀌면 강제집행 때 압류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반려동물에게 상속이나 신탁을 해주는 것이 가능해질 수 있다. 

 

동물병원 의료사고나 개물림 사고의 경우, 지금은 재판까지 가더라도 손해배상액은 치료비, 분양비 실비에다 약간의 (정신적) 위자료를 보태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앞으로는 손해배상액이 크게 높아지는 등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또 동물이 제3의 법적 지위를 받게 되면, 소송의 주체가 될 수도 있다. 학대 받은 동물이 후견인이나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 

 

도룡뇽이나 산양 같이 야생동물이 소송의 주체가 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도룡뇽을 앞세운 2004년 천성산 터널공사 소송이나 산양을 앞세운 2019년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소송 등은 동물의 '당사자성'이 인정되지 않으면서 모두 각하됐었다.

 

그래도 남는 한계는


민법 개정만으로는 아직 한계가 여럿 남는다. 민법이 '기본법'인 만큼 동물을 다루는 다른 법률들에 당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선언적' 의미가 더 크다는 얘기다. 

 

 

이번 개정안 신설 제98조2의 2항에서 “동물에 대해서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물건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고 규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결국 구체적으로 달라진 세상을 경험하려면 아직 여러 법률들의 후속 개정 작업과 여러 판결들의 축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또 한가지, 민법 개정안은 ‘동물’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다. 현행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은 ‘반려동물’을 개 고양이 토끼 기니피그 햄스터 패럿 등 6종류로 정해놓았다 

 

그렇다면 소 돼지 닭 오리 등 축산농가에서 키우는 '산업동물'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해석상의 문제가 남는다. 산업동물은 '가족'이라기보다는 아직 축산농가의 수익을 올리는 경제적 재물이고, 또 한편으론 국민들 식용으로 쓰이는 식품의 하나로 분류되고 있어서다. 즉, '생명'과 '물건' 사이의 경계에서 어떻게 분류하느냐는 또다른 고민거리가 된다. 

 

다만, 산업동물도 '동물권'을 지닌 주체로서의 지위는 보다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개념을 현행 동물보호법은 이미 일정 부분 담고 있다. 동물보호법은 ‘동물’을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로 규정한다. 

 

이번 민법 개정안은 그런 동물의 범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즉, 동물보호법이 정해 놓은 '반려동물'의 범위를 뛰어넘어 동물 전체로 그 개념을 확장시킬 여지를 남겨 놓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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