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타임즈】 ‘고양이 전염성 복막염 (FIP, Feline Infectious Peritonitis)’. 고양이가 걸리는 가장 치명적인 질환의 하나다. 진단 내리기도 어렵지만, 마땅한 치료 방법도 딱히 없다.
증상을 완화 시키는 대증요법 외에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기가 힘들어서다. 치사율도 높다.
게다가 많이 걸리기도 한다. 고양이 코로나 바이러스(Feline Corona Virus)의 일종으로 전염성 질환이기 때문. 대개는 초기에 약한 설사 증상을 보이지만 무증상인 경우도 있다.
태능고양이동물병원 김재영 원장은 3일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장염을 앓는데 이 바이러스가 변이 되면 전염성 복막염을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고양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이 원인은 아직까지 명확하게는 밝혀지지 않았다.
FIP는 증상에 따라 습식과 건식으로 나뉜다. 습식은 배, 특히 복강이나 흉강에 물이 차서 배가 볼록해진다. 심할 경우 발열과 호흡 곤란 증상도 보인다. 건식은 눈에 질환이 생기거나 다발성 신경 증상이 발생한다.
지금까진 걸리면 방법 없어... 최근 미국에서 2가지 신약 물질 개발돼
김 원장은 “현재까지 고양이 전염성 복막염에 대해선 대증 치료밖에는 없어, 복막염 증상이 나타나면 1주일에서 1개월 내에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설명했다.
복막염에 걸리면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도 하는 이유다. 그래서 FIP에 걸린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들은 '멘붕'에 빠진다. 가만히 두 눈 뜨고 죽어가는 걸 지켜보거나, 아니면 '불법'을 저지르더라도 만일 방법이 있다면 고양이를 살려보겠다는 선택의 기로에 설 수 밖에 없다.
현재 국내엔 치료약도 없다. 최근 들어서야 미국에서 이를 치료하는 약물이 개발된 정도.
미국 UC데이비스(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와 캔자스주립대(University of Kansas) 연구진이 2017년, ‘GC376’ 약물이 FIP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논문을 발표한 것이 처음이다. 이 때 논문에 따르면, ‘GC376’으로 치료했을 때 FIP에 걸린 20마리 고양이 중 7마리가 치료 됐다.
이어 2019년에도 일종의 항바이러스제인 ‘GS-441524’라는 새 약물이 고양이 전염성 복막염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논문에 따르면 ‘GS-441524’로 최소 12주간 치료했을 때 31마리 중 결과적으로 25마리가 살아남아 장기 생존했다. 치료 확률이 확 높아진 것.
그런데 문제는 남았다. 'GS-441524' 특허를 미국 제약회사 길리어드 사이언스(Gilead Science)와 UC데이비스(UC Davis)가 갖고 있는데, 미국 현지법 때문에 해외에선 살 수가 없는 것. 수의사 처방을 받아야 한다는 이유 등이다.
또 치료 효과가 나타나려면 약을 최소 6주 이상 12주까지 매일 주사해야 하고, 그것도 고양이 몸무게 1kg당 2~4ml씩은 주사해야 한다. 그럴 경우 주사약 구입비만 천만원대를 훌쩍 넘는다.
치료를 해주고 싶어도 국내엔 약이 없고, 그나마 미국산을 수입하려면 통관 비용에 관세까지 일반인들로선 엄두가 안 나는 상황.
미국산은 비싼데 구하기 어렵고... 저가 중국산을 해외 직구로
그 틈새를 노려 중국에서 'GS-441524'를 이용해 주사제를 만드는 업체가 생겼다. FIP 진단을 받은 고양이의 보호자 A씨는 "미국산을 구해도 중국산보다 가격이 몇 배나 차이가 나서 굉장히 비싸다"고 말했다.
그 소문을 듣고, 집사들은 약을 찾아 헤매었다. 그리고 국내 유통사들이 이를 대리 구매해주기 시작했다.
중국의 대표 쇼핑몰 '알리바바'를 통해 직구를 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고양이 FIP바이러스 영양솔루션'(Cat FIPV Nutrient Solution)이란 이름으로 5ml 한 병에 35달러에 팔았다. 2.5ml 저용량은 15달러.
심지어 국내 중고거래 모바일 앱에서도 1병에 20만원 정도에 거래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곳곳에서 국내 법과 충돌했다. 먼저, 동물약품 제조 및 수입 인•허가를 내주는 농림축산검역본부의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게 문제. 특히 전문 의약품을 의사 처방 없이 온라인 유통하면 이는 '약사법' 위반이다.
또 적잖은 비용을 들여 구했다 해도 범법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수입 허가조차 받지 않은 약품을 수의사들이 내놓고 처방하거나 주사해줄 수 없는 상황에서, 보호자들은 자신이 직접 주사를 놔줘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는 것. '수의사법'을 위반한, 불법적인 '자가 진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수백만원 고비용에, 불법 '자가진료'에... 집사들 고통 가중
설상가상으로 구매 대행을 해오던 수입업자들은 국내 약사법 위반 신고 등으로 최근 그 자취를 감췄다.
보호자 B씨는 “구매를 대행해주던 판매업자가 사라진 상황에서 어떻게든 제품을 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치료 방법인데 비용이 조금 많다해도 우리집 고양이를 빨리 치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김재영 원장은 "아직까지 GS-441524 물질로 만든 약을 신뢰할 수 있는 제도적인 과정이 없다”며 “함량이나 유통 과정, 독성 검사 등 여러가지 확인 절차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도 "현재 공식적으로 GC376이나 GS441524 물질로 제조나 수입 허가를 받은 의약품은 아직 국내엔 없다"고 했다. 현재 국내 유통되고 있는 관련 약품들은 모두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안정성과 유효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걸 분명히 한 셈이다.
국내 벤처기업 휴벳, 복막염 치료약 임상시험 도전
그나마 국내의 한 동물용 의약품 벤처기업이 GS-441524를 이용한 의약품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는 것에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잘 하면 '메이드인코리아(Made in Korea)' 치료약이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휴벳(대표 오홍근⋅수의사)은 지난해 6월 국내 기술로 GS-441524의 합성을 완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임상시험 승인요청서를 검역본부에 제출해놓은 상태.
휴벳은 올 상반기 중 임상시험 승인이 나면 독성시험 등 관련 절차를 완료한 후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엔 품목허가도 받아 시판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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