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타임즈】 안재상 원장의 ‘(동물)수정체탈구교정술’은 특별하다. 동물 안과 치료법은 대개 사람 치료법과 유사하지만, 그의 교정술은 사람 치료법을 응용하면서도,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수의안과’만의 독특한 반경을 연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
일례로 사람의 경우, 수정체가 떨어져나가는 경우(수정체 탈구증)는 거의 없다, 그런데 개는 다르다. 나이가 들거나 유전적 원인이 있는 경우 수정체가 종종 탈구된다.
"지금까지는 수정체를 그냥 떼내 버리는 방법 밖에 없었어요. 수정체가 탈구되는 건 수정체를 안구에 지지해주는 소대가 끊어져서 그런 건데요, 수정체를 떼내면 렌즈가 없기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죠.”
그래서 이전에도 개에게 인공렌즈를 봉합해주는 수술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특수 제작된 인공렌즈가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어 널리 활용되지는 않았다.
학회에 발표한 '수정체탈구교정술', 수의안과 독특한 반경 열어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수의안과학회에서 '수정체탈구교정술'을 발표했어요. 인공렌즈를 삽입한 후 실로 꿰매어 고정시키는 수술이었죠. 반응이 좋았어요. 게다가 기존의 특수 제작된 인공렌즈가 아닌, 일반 인공렌즈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 일본 수의사들까지 많은 관심을 보이더군요."
지난해부터 20케이스 정도 수술을 했는데, 성공률이 80%에 달한다. 나머지 20%는 인공렌즈가 잘 유지되다가도 유전적인 원인에 의해 녹내장이나 망막박리가 생긴 경우 뿐. 2년이란 짧은 기간에도 수술법이 안정화 단계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서울 강남구 청담눈초롱안과동물병원 안 원장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수의안과 전문의. 서울대 수의대에서 학사-석사-박사를 마치고 미국 위스콘신대,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코넬대 등에서 포닥(post-doc.)과 익스턴십(externship) 과정을 거쳤다.
"수의대 본과 1학년 때, 해부 실습하는데 칼끝에서 손으로 전해오는 그 느낌이 특별했어요.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손재주가 좋은 분이셨는데, 그 피가 제게도 흐르고 있었던 거죠. 그 후 언젠가 백내장 수술 동영상을 우연히 보게됐는데, 뿌옇던 강아지 눈이 수술로 초롱초롱해지는 것을 보며 제 눈도 함께 떴습니다. 외과 중에서도 '안과'라는 제 길을 발견했으니까요."
아시아수의안과학회 설립자 역할을 했던 서강문 교수(현 서울대 수의대학장)도 '안과'라는 한 길로만 쭉 달려올 수 있게 한 이정표가 됐다.
미국에서 돌아와 2016년 개원할 때도 망설이지 않았다. 전문병원과 로컬병원이 각각 공존하며 유기적으로 상생하는, 선진국들의 성장 경로를 이미 보았기 때문. 개원 이듬해 2017년엔 일본 중국 한국 등에서 두루 인정받는 '아시아수의안과전문의'(AiSVO)로도 선정됐다.
처음부터 안과 전문병원 표방... 이젠 '2차 병원' 역할도
2020년 하반기로 접어든 지금, 안 원장의 섬세한 손길을 거친 진료 건수는 연평균 7천 케이스를 넘어섰다.
백내장 180건을 비롯, 수술만 500건을 넘는다.
특히 서울 등 수도권뿐 아니라 전국에서 환자가 찾아온다.
그 중 30% 이상은 다른 로컬병원들 추천과 의뢰를 받아온 환자들. 백내장 녹내장를 비롯해 안과 한 길만 파다보니, 자연스레 '2차 병원' 면모까지 갖추게 된 셈이다.
진행성 망막위축증(PRA)이나 급성의 후천성 망막변성증(SARD)과 같이 앞으로 개척해야 할 분야도 적지 않다. 진료 케이스가 많은 백내장쪽 치료법도 그렇다. 안과 수의사로서 해야 할 일들이 자꾸 늘어난다.
최근 레이저 내시경 수술 장비(ECP)를 도입한 것도 그래서다. 이전 초음파 수술법보다 좀 더 안정적으로 안압을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
"백내장만 하더라도 최근 들어선 보호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치료를 하려 하죠. 예전엔 사실 '강아지도 나이 들면 안 보이는 거지...'라며 수술까진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만큼 우리 반려동물 문화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동물병원 진료비 오해... "원가부터 부담금까지 사람과 다른 것"
하지만 아직 부족한 게 많은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게 바로 병원 진료비 문제. 백내장 수술을 예로 들면 사람과 동물은 아주 다르다.
"사람의 경우, 일단 마취가 필요 없어요. 그래서 안과전문병원이라면 20분에 1명씩 수술이 가능하죠. 하지만 동물은 자꾸 움직이니까 마취 없이는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다보니 미리 입원을 시켜 각종 사전검사부터 해봐야 합니다. 수술도 최소 1시간은 걸리고, 동물용 인공렌즈는 사람용보다 4배나 비싸죠."
게다가 사람은 치료비의 20~25%만 부담하면 된다. 나머지는 국가의료보험의 몫. 자신이 아프든, 아프지 않든 월급에서 의료보험료는 늘 꼬박꼬박 내고 있기 때문.
하지만 동물은 보호자가 100% 부담한다. 거기다 부가세까지 10%가 더 붙는다. 원가부터 본임부담금까지 치료비를 단순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난센스(nonsense)다.
"보호자와 동물병원이 정반대 쪽에 서 있지 않습니다. 진료비 낮추는 게 오히려 서로에게 더 이익이 되는 측면이 많으니까요. 동물 진료에 의료보험을 적용하기가 아직 어렵다면, 부가세만이라도 면제해주면 보호자 부담이 당장 10%는 줄지 않나요? 사람 의료에는 부가세 붙이지 않잖아요."
그는 이어 "정부나 국회가 동물복지정책을 만들 때, 그게 현실적이 되려면 임상 현장 목소리도 충분히 경청했으면 한다"고도 했다. 동물병원들도 그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함께' 해결해야 할 핵심 주체이기 때문이다.
글= 기자 윤성철 박태영, 사진= PD 송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