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유는 사람 인의시장은 빨리 적용하기 쉽지 않으니, 동물병원 쪽에 먼저 실험해보자는, 즉 ‘테스트 베드’(test bed)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죠. 하지만 사람과 동물은 다릅니다.”
가장 큰 차이는 동물은 말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 아픈 동물을 대신해 보호자가 수의사와 얘기해야만 하기에 증상 진단과 치료에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한다. 즉,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병원 진료실에서조차 쉽지 않은 일 아니냐는 것이다.
“아마 정부도, 산업계도, 보호자들도 그런 사정을 알지만,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비대면 진료를 요구하게 될 겁니다. 거기에 동조하는 수의사들도 일부 있을 것이고요. 그래서 ‘위기’인 거죠. 하지만 동물들 건강을 책임지는 수의사로서 저는 반대입니다.”
지금 수의계는 위기 상황
황 원장은 “사회적 현실과 우리들 이상 사이엔 항상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그런 사회적 요구가 ‘동물복지’라는 우리의 이상을 포기하면서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희생인가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 침체 속에서도 반려동물 분야는 그나마 지속 성장하고 있는 ‘특별한’ 산업. 이를 잘 키워 나가자면 관련 업종들이 유기적으로 잘 연계돼야 한다. 산업계와 보호자들 사이도 마찬가지.
“수의 진료라는 특수한 영역에 정부가 ‘면허’제도를 부여했으면, 그 면허권에 대한 고민도 정부가 같이 해줘야 한다 생각합니다. 면허의 안정성이 먼저 확보돼야 그 위에서 수의 산업도, 동물 복지도, 소비자 보호도 함께 만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수의사 처방 대상 동물의약품 지정 문제부터 진료의 표준화, 진료비 공시제 등에 이르기까지 면허제를 뒤흔드는 각종 통제장치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
“산업적인 기반과 법적인 기반이 같이 가야 하는데, 소비자 편의 위주로만 가니 오히려 시장의 잠재력이 떨어져가요. 필수산업이 피해를 입기도 합니다. 치료에 꼭 필요한 약품을 어렵사리 개발해봐도 약국에서 비슷한 처방약을 박리다매로 팔아버리면 다 물거품이 되는 이치와 같은 거죠.”
그러나 수의계를 바라보는 부정적 인식은 오랫동안 동물병원 임상 현장에서 비롯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빠르게 높아지는 사회적 기대 수준을 수의계가 따라가지 못하면서 생긴 격차가 클수록 보호자들 불만도 따라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
황 원장도 “수의계 역시 코로나 시대에 맞춰 근본적인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동네의 1차 병원과 권역의 2차 전문병원, 그리고 24시 응급병원들이 서로 역할을 나눠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병원도 살고, 보호자들 요구도 맞출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한 것도 사실이죠.”
그는 이어 “임상 현장에서의 그런 구조적 문제에 앞서 우리 대학들도 수의사들을 제대로 양성하고 있는가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고 했다.
수의대 6년 과정과 국가시험을 거쳐 면허를 받은 수의사라면 초보라 하더라도 임상현장에서 어느 수준 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현재 대학 교육이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이제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때
“제대로 된 GP(General Practitioner)를 먼저 잘 키워내야, 그런 ‘GP’ 기반 위에서 ‘전문의’ 제도를 학계 주도든, 정부 주도든 도입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또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 사회가 원하는 동물 보건 수준으로 나아가려면 전국 10개 수의대들이 서로 긴밀하게 동반 성장을 이뤄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각 대학병원들이 보유한 기자재와 인적 자원 DB를 구축, 동네병원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중증질환들에 대한 연계 치료를 할 수 있게 하는 것도 그 한 방안이다.
코로나19로 미국 등지에선 수의 산업까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매출이 반타작 났다고 아우성이다. 대면 접촉을 기반으로 한 오프라인 산업의 특성 때문. 국내 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황 원장도 지금이 위기 상황이라는 데는 공감했다. 다만, 그 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최근 제시되고 있는 ‘비대면 진료’에 대해선 깊은 우려와 함께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오히려 그런 대증요법에 앞서 수의사 면허권 안정, 수의대-대학병원-2차병원-1차병원 유기적 연계시스템 같은 구조 혁신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더욱 강조한 것은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