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타임즈(COCOTimes)】
내년 10월 25일부터 27일까지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제23차 아시아태평양수의사대회 총회(아시아수의사대회)'가 'A Way Forward: One for All, Asian Vets'를 주제로 열린다.
1978년 필리핀에서 창립한 아시아태평양수의사연맹(FAVA)은 2년마다 회원국을 순회하며 학술대회와 총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대한수의사회(회장 허주형)가 지난해 11월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린 제22차 아시아수의사대회에서 태국을 9대 5로 제치고, 20여년 만에 대회 유치를 확정한데 따른 성과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 주목할 만한 건, 유한양행이 국내 기업으로선 처음으로 메인 스폰서가 됐다는 사실이다. 이제까지 대부분은 외국계 회사가 메인이었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의미 있는 변화로 풀이된다. 앞으로 우리나라 기업들이 전 세계 반려동물 문화나 산업을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아시아·태평양은 물론 전 세계 수의사들이 동물의료기술 및 세계적 동물감염병에 대한 대처 등을 논하게 될 이번 대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최근 심각한 사회적 우려를 야기하고 있는 럼피스킨병이나 내성 빈대 출현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의사들의 노력이 그만큼 절실한 까닭이다.
대회 개최국이 아시아수의사연맹(FAVA, 아시아수의사회)의 회장을 맡는 규정에 따라, 우선 부회장으로 활동하다가 내년부터 2년 동안 아시아수의사회 회장직을 수행하게 될 허주형 대한수의사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허주형 회장은 동물방역에 대한 국제적인 협력 강화와 임상수의사들의 역할을 무엇보다 강조했다. 가축전염병은 국가 간 나라를 건너 이동·발생하고, 그렇기에 아시아 지역 임상수의사들이 공동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막을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다.
허 회장은 "아프리카 돼지열병으로 인해 북한 내 돼지사육은 거의 소멸돼 가고 있지 않나 추측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엄중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라며 "가축 질병 방역에 있어선, 각 나라에 있는 수의사들과 교류하면서 지식이나 정보를 받아 우리나라에 도입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발생된 질환을 이웃나라에 알려주는 등 전 세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만 잘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일본이나 대만, 중국은 물론 북한도 동참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국제적인 심포지엄 개최 등을 통해 동물방역과 관련해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는 게 허 회장의 구상이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항생제의 오·남용 유발로 국민의 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는 동물 자가진료 문제를 개선하기는커녕 비(非)수의사를 가축방역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고 개탄했다.
"자가진료라는 게, 동물을 키우는 사람 입장에서는 '내가 약을 사서 주사 놓으면 편하지'라고 할 수 있겠지만, 거꾸로 그 주사약들이 사람한테 전해지게 되면 항생제 내성이라든지, 호르몬의 영향 등 굉장히 위험합니다. 또, 농가의 경우 해당 약을 그냥 쓰레기통에 버림으로써 토양을 오염시키게 되고, 결국 강까지 오염시키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간혹 토양이나 강에서 항생제가 검출되는 것도 그런 이유인 거죠."
또한, 자가진료를 많이 하면 할수록 오히려 질병이 더 많이 생기는 악순환이 발생하는데, 그것은 증상에 대한 오인으로 원인병을 더 키우거나 각종 소모성 질환을 치료하지 못해 더 큰 비용을 부담해야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가축방역관 수급이 어렵다는 이유로 법 개정을 통해 비수의사를 가축방역관으로 임명하겠다는 정부의 행태 또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허 회장은 꼬집었다. 의심축에 대한 예찰·임상검사나 시료 채취, 주사, 병성감정의뢰, 역학조사 등 가축방역의 핵심적인 업무 전반을 처리하는 인력을 어떻게 수의학적 전문성이 없는 사람으로 쓸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민국에서 면허를 받은 수의사가 2만2천 명이에요. 이 가운데 수의사 면허를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이 1만4천 명이고, 그 중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사람은 7천~8천 명 사이입니다. 나머지 6천~7천 명은 동물병원 밖에서 일하고 있는 거죠. 게다가, 동물을 직접 치료·관리하고 증상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임상수의사밖에 없습니다. 럼피스킨병의 경우도 동물병원 원장이 발견해 신고를 했거든요."
임상수의사를 주축으로 방역이 이뤄져야하는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허 회장은 강조했다. 방법적으로는 '농장 주치의 제도'를 통해 동물병원이 농장을 관리하는 민간방역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으로, 공무원들이 중심이 된 국가 방역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피력했다.
예컨대, 행정관료들로만 구성된 방역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로서 임상수의사를 영입, 방역을 총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란 설명이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청송, 영덕까지 내려간 상황입니다. 조금 있으면 우리나라 전체에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확산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단계에 와 있는 것입니다. 방역 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이 시급한 시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허 회장은 3년 전부터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에 전염병이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등 지금의 불행한 사태를 막아야 한다고 부르짖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지난 봄에도 정부의 방역 상황을 보고 '이렇게 가면 11월에 전염병이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고, 앞서 지난해 5월엔 구제역 발생을 예측하기도 했는데, 그의 말은 모두 맞아 떨어졌다.
"동아시아에서 럼피스킨병이 발생한 건 우리나라가 처음이에요. 굉장히 창피한 일이죠. 구제역 백신을 10년 동안 놓는 나라도 없습니다. 이런 것도 우리나라의 방역당국이 대오각성해야 할 부분으로, 방역을 동물병원에 돌려주는 것을 더이상 미뤄선 안 될 것입니다. 그래야 수의사들이 방역 현장에 나갈 수 있으니까요."
오죽하면 자신이 수의과대학 때 배웠던 질환이 전부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다고 하소연하는 허 회장은, 그래서 다시금 기본으로 돌아가 수의사나 가축 방역기관, 일반 농장주 등의 역할에 대해 제대로 고민해 보자고 제안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도 동물 질병이 발생되고 살처분하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말이다.
한편, 내년 10월 개최 예정인 'FAVA 2024 대회'에선 질병관리청과 인수공통 전염병에 대한 심도깊은 논의가 이뤄질 수 있는 하나의 섹션이 마련되고, 또 정부의 핵심 관계자를 초청해 동물 복지에 대한 강연도 진행할 예정이라는 소식이다.
"코로나나 사스, 메르스 등은 다 동물 유래성 질환이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인수공통 전염병에 대해 고민해 보자 했던 거고요. 그렇게 질병관리청과 전 세계 수의학 관련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인수공통 전염병에 대응해 어떻게 방어하고 예방해야 하는지, 또 치료해야 될 지에 대해 논의하게 될 것입니다."
임상수의 동물병원을 28년 정도 운영하며 수많은 동물의 아픔과 치료 현장을 함께 한 허 회장은, 당연히 반려동물 의료 쪽에도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또한 우리나라 동물들이 조금은 더 편안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전했다.
"갑자기 무서운 질환이 나타나서 오늘까지 치료하는 애를 내일 아침에 다 죽여야 되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더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또, 반려동물 또한 이제는 우리가 가족으로 여기게 됐잖아요. 그런 의미에선 반려동물도 올바르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우리나라에 있는 동물들도 안전하고, 사람도 안전하고, 그래야 질병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