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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암투병 끝 하늘나라로 간, 도자기로 빚은 나의 반려묘 '마루'

오묘한 생명력 돋보이는, 김순자 작가의 테라코타 작품들

【코코타임즈(COCOTimes)】

 

장장(長長) 17년 만에 개인전을 가진 김순자 작가는 소위 도자기 공예(테라코타)를 전업으로 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들은 여느 전시에서 만날 수 있던 것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2년 전 암투병 끝에 하늘나라로 떠난 자신의 반려묘 '마루'의 모습을 그대로 도자기에 형상화한 작품이었다.

 

 

"제가 한 10년 키우다가 암에 걸렸는데... 열심히 치료를 했지만 결국 가더라고요. 그리운 마음에 종종 사진을 보다가 작품으로라도 만들어 놔야겠다 싶어서 작업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그 모습은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 중에 '마리'를 본 사람들이 "어! 마리네" 할 정도였다. 특히, 영롱하면서도 그윽한 에메랄드 빛의 눈은 생전의 '마리' 그대로였다. 그래서, 혹시 나중에라도 '마리'를 중심으로 한 전시 계획이 있는 지를 조심스레 물었다. "너무 슬플까요?"라면서. 

 

"우선, 우리 '마리'에 대해 기억을 많이 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했어요. 실은 딸내미가 권하기도 했고, 또 제 마음 속에 숙제로 남은 게 하나 있어요. 바로 '마리'의 사리함을 제작해 주는 거예요. '마리'가 죽고 나서 사리를 만들었는데, 아직까지도 제가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 중이라서 못 만들고 있거든요."

 

단순히 도자기로 사리함을 만드는 작업 쯤이야, 김 작가에겐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민 중이라는 그녀의 말은 왠지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사실, 김 작가가 빚어낸 동물 테라코타는 사진만 보고 작업을 한 경우라도 유난히 실물과 닮아 더욱 특별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그래서 제안도 많이 받는 편이다.  

 

또 하나 눈길을 끈 것은 그녀가 "'마리'에게 선물하고 싶은 집"이라고 소개한 작품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자세히 들여다 보니 대문 위쪽에 'Maris'란 글자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작가는 참으로 누구보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작가로서 재능이 있으니 사랑하던 반려묘를 작품에 담은 건 그렇다 쳐도, 하늘에서라도 예쁘고 좋은 집에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선물로 만들었다는 도자기 집에 대한 감동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명품(名品)'의 가치는 무엇이고, 명작(名作)'의 가치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김순자 작가의 작품들은 그야말로 세간의 주목을 이끌어 낼 만큼 신선하고 빼어났다.

 

김순자 작가의 첫 인상은 수수하지만 도도한 아름다움을 지닌, 그러면서도 고고한 면모가 돋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래서일까, 어쩐지 차가운 이미지가 좀처럼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인물로 보였다.

 

하지만, 기자의 선입견이 깨지는 데 걸린 시간은 아주 잠깐이었다. 작가로서 심각한 표정을 지을 때 말고는, 오히려 웃는 얼굴이며 밝은 말투가, 아주 예쁘고 천진난만한 어린 소녀 같은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라는 느낌을 대화 내내 받았다.

 

다양한 자태와 표정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작품들 역시 제각각 그 매력을 마음껏 분출하고 있었다. 꽤 넓은 전시공간이 비좁아 보일 정도로 말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테라코타 작품들은 유독 창의적이고 독특해 눈길을 사로잡는다. 눈·코·입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동감은 흡사 살아 숨 쉬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켰다. 

 

보통의 테라코타와는 분명 차원이 다른데, 딱히 마땅한 명칭이 없으니 '도자기로 만든 인형'이라 말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미안할 정도다. 

 

그리고 그것은,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작가의 예리한 시선에 잡힌 각양각색의 표정들이 의도적으로 옮겨지고, 여기에 1천도가 넘는 가마의 뜨거운 열기를 견디며 덧씌워진 운명같은 오묘함까지 가해져 탄생한 생명력이었다. 

 

 

어릴 적부터 만화를 좋아해 보고 그리는 것 모두를 즐겼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 사소한 것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라는 김순자 작가. 아마도 그녀는 그렇게 인간 군상 속으로 들어가며 세월이 흐른 시간만큼이나 표정 읽는 노하우들을 켜켜히 쌓아 놓은 듯했다.

 

김순자 작가는 "의도한 대로 표정이 나오면 나름의 성취감이 있는데, 의도하지 않은 표정이 나왔을 때도 너무 재밌다"면서, "의도하지 않았는데 굉장히 만족스러운 표정이 나올 때도 있다"며 활짝 웃었다. 그러면서, 영화 '크루엘라' 주인공에게서 영감을 얻어 작업(아래 사진)에 임하게 된 작품이 대표적이라고 소개했다.  

 

 

"엄청 신경도 많이 쓰고, 손도 많이 간 작품인데, 사실 '뜻대로 안 되는구나'를 제일 많이 생각하게 한 작품이에요. 얼굴도 생각보다 약간 나이들어 보이게 나왔는데, 그게 오히려 오래 산듯, 고뇌가 있는 듯 여러 가지 느낌으로 삶의 무게를 담담히 보여주고 있는 듯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김 작가의 시선과 발길을 잡는 게 어디 영화뿐이겠는가. 길을 가다 만나게 되는 동물이나 인형, 심지어는 길바닥에 떨어진 종이 한장도 그녀의 눈길이 닿았다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어떤 헝겁인형 셋이 나란히 몸을 축 늘어뜨리고 있는 모습이 안스러워 지켜보다가 결국 작품으로 완성했다"며 직접 흉내를 내 보이는 김 작가의 모습이, 이렇게 표현해도 될 지 모르겠으나 엄청 귀여웠다.  

 

그녀에게서 또하나 특징적으로 두드러지는 건 '삶의 성찰에 대한 느낌'을 주무기인 '섬세함'과 '꾸준한 실험 정신'을 통해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액세서리를 전혀 못하는 자신을 대신해 커다란 귀걸이와 팔찌 등을 휘감은 작품(아래 사진1)이나 지붕 위에 구름이 걸칠 만큼 하늘 끝까지 닿는 큰 집이어서 이를 지키는 강아지까지 있는데, 정작 사람 사는 공간은 작고 아래는 텅 비어 있는 작품(왼쪽 사진 2)이 그렇다.   

 

도자기로 만든 컵의 경우도 하도 유별나게 만드는 걸(위 사진 3) 좋아해 스승의 잔소리(?)를 듣기 일쑤지만, 거꾸로 선생님을 이겨 먹는 스타일이라고 농담을 건네는 김 작가다. 

 

 

"제가 비워 놓은 공간이지만 사람마다 채우고 싶은 건 저마다 다르더라고요. 어떤 분은 꽃을 한 송이 넣으면 좋겠다고 하시고, 또 어떤 분은 강아지를 위해 배려하겠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론 아직도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는 뜬구름 같은 꿈을 꾸고 있네요."(웃음)

 

얘기를 듣다보니, '땅부터 하늘까지 뭔가 공존에 대한 생각을 무던히도 하는 작가구나'라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져 왔다. 호랑이 민화를 이용한 도판화의 경우도 이와 결을 같이 한다. 

 

풍수지리학적으로 액을 막아주는 의미도 있지만 자녀들이 호랑이띠여서 선택한 소재이기도 한 까닭이다. 게다가, 흙을 네모난 모양의 판으로 만들어 작업하는데 그치지 않고, 여기에 유리를 깐 공법으로 작품을 완성한 것도 이채롭다. 도자기가 구워져 나올 때 당김을 참지 못하고 갈라진 자연스러운 문양이 꽤나 멋스럽다. 

 

 

하지만, 세상 일이란 게 어디 마음 먹은대로 다 되겠는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김 작가 스스로가 야심차게 준비했지만 실패한 작품이 있다고 말하는 것 또한 그랬다.

 

"처음부터 언발란스란 의미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어요. 사이즈도 크고 해서 세 개로 나눠 굽는데, 가마가 고장난 거예요. 그래서 전체가 더 언발란스해져 버렸죠. 세상이 내 맘 같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기자가 판단하기엔 이 역시도 굉장히 철학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작품에 담긴 작가적 고뇌와 의미 또한 고스란히 가슴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힐을 한 번도 못 신어 봤어요. 평생을 운동화만 신고 살았으니, 힐에 대한 로망도 있는 것 같아요. 언젠간 신고 서 있겠지 하고요. 또, 가슴에는 사랑도 많지만 어디든 흘러가고 싶은 마음도 있고, 머리는 항상 딴 생각으로 가득차 있어요. 뭔가를 바라는 것처럼요."

 

한 남자의 아내로, 자식들의 어머니로 등등 우리네 삶이 그런 것처럼, 바쁘고 힘겨운 일상 속에서 감당해야 할 무거운 짐들로 여겨지는 것들은 김 작가의 작품들 어깨에 살포시 얹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여유를 찾아 즐길 줄 아는 그녀의 큰 우주는, 자신의 정신적 지주인 언니의 띠를 인용한 '닭'과 한가로움의 상징인 '찻잔'으로 풀어냈다. 

 

인터뷰를 마친 짧은 소감을 한마디 곁들이자면, 김순자 작가는 어쩌면 작품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세상 일 별 것 없고, 마음 먹기 나름이니, 마음 속의 우주를 들여다 보라"고 말이다. 그녀의 전시 타이틀이 '陶魂(도혼)을 담다'인 이유도 이런 의미를 담고 있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