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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인터뷰】아시아수의안과전문의 서강문 서울대 교수

 

 

【코코타임즈】 "백내장은 완치하는 치료법이 나왔는데, 녹내장(綠內障, Glaucoma)은 아직 요원합니다. 치료 시기를 놓쳐 시신경이 망가지면 시력은 돌아오지 않아요. 그럴 땐...." 

 

사람이든 강아지든 눈의 각막과 홍채, 수정체 사이엔 투명한 방수(房水, Aqueous Humor)가 그 틈을 채우고 있다. 방수가 잘 생기고, 잘 빠져나가야 눈이 제 기능을 한다. 

 

그런데 방수 배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녹내장이 생긴다. 시야 외곽부터 뿌옇게 흐려지다 결국엔 시력을 잃는, 무서운 병이다. 

 

실명(失明)도 큰일이지만, 통증도 큰일이다. 방수가 빠져나가지 못하면 안압이 높아진다. 안구가 커지고 시신경이 망가지면서 통증까지 심해진다.

 

녹내장으로 생긴 눈의 통증... 유리체 안에 '시도포비어' 시술로 해법 찾아


서강문 교수는 거기에 주목했다. '녹내장'으로 진단할 때면 이미 시력은 포기해야 할 만큼 나빠진 상태인데, 통증이라도 낮춰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러 시도 끝에 염증 치료에 쓰는 항(抗)바이러스 약물 ‘시도포비어’(Cidofovir)를 유리체 안에 주입하는 시술법<사진>을 찾아냈다.  

 

환자 통증을 확 줄여줄 길이 열린 것. 게다가 전신마취 없이 눈 부분마취만으로도 가능하다는 게 알려지며 눈 치료를 해오던 일반 동물병원들은 탄성을 질렀다. 시술 부작용에 대한 부담마저 훨씬 줄었다. 

 

 

강아지, 특히 소형견엔 ‘유루증’(Epiphora)이 많이 생긴다. 눈물이 흘러내려 눈 주위 털이 붉게 변하는 증상. '눈물착색증후군'(TSS, Tear Staining Syndrome)이라고도 한다. 

 

원인은 알레르기, 감염, 포르피린, 락토페린 등 여러 가지. 눈물샘 장애와 같은 해부학적 원인으로 생기기도 한다. 이를 처음 발견하고 또 가뿐하게 치료까지 해낸 이가 바로 그다.

 

눈물샘 고장 난 유루증, 수술로 해결...전국 넘어 일본에서까지 관심 


대학 부설 동물병원에서 '외과 뺑뺑이'를 돌던 서강문 학생(박사 과정)에게 '수의안과'(獸醫眼科)라는 분야에 관심을 갖게 한 질병. 그 주제로 박사 논문(1995년)도 썼다. 

 

 

전국에 이 수술법이 퍼지면서, 일본에도 알려졌다. 거기도 우리처럼 소형견 많이 키우는 나라니까. 일본 안과 수의사들에게도 서강문의 TSS 수술법은 흥미로웠던 것. 

 

그를 유명 인사로 만들었던 두 치료법이 모두 눈의 ‘물’과 관련 있다는 것도 특이하다. 하나는 눈물, 다른 하나는 방수. 하나는 너무 많이 흘려서, 다른 하나는 너무 흘리지 않아서.

 

수의안과 분야의 첫 아시아전문의...2011년 아시아수의안과학회 창립 주역


서강문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아시아수의안과전문의’(DAiCVO, Diplomate of the Asian College of Veterinary Ophthalmologists)다. 아시아 수의사들이 인정한 안과 전문 수의사라는 얘기다. 

 

 

2011년 10월 제주도. 세계 125개국 반려동물 수의사들의 총회 WSAVA(World Small Animal Veterinary Association)가 열렸다. 동물 의료 역사가 길지 않은 우리나라에선 처음 열린 총회. 

 

그런데 그 WSAVA에서 특별한 뉴스 하나가 나왔다. "AiSVO(아시아수의안과학회) 창립." 아시아권 안과 수의사들의 연합 조직 AiSVO(Asia Society of Veterinary Ophthalmology)가 첫 발을 뗀 것이다. 

 

그러면서 아시아수의안과 '전문의'(diplomate) 선발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일본 한국 대만, 세 나라의 유력 안과 수의사들 사이에 논의를 해오던 터였다.  

 

여기에 아시아 여러 나라 10명의 중견 수의사들이 응모한 상태. 유럽 전문의(ECVO, 3명)와 미국 전문의(ACVO, 2명)가 이들의 안과 임상 경력(10년 이상)과 진료 케이스(연간 300 케이스 이상), 수술 경력,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SCI(E)급 논문 편수 등을 엄격히 심사했다. 

 

그렇게 5명이 선정됐다. 일본 3명, 한국 1명, 대만 1명. 이들에겐 '(전문의학회)설립전문의'(founder Diplomate of AiCVO)란 특별한 역할이 부여됐다. 이젠 이들이 아시아권 '수의안과전문의’ 심사 기준과 선발 밑그림을 그리게 될 것이기 때문. 

 

 

거기에 그가 있었다. 박사 지도교수(남치주 서울대 명예교수)로부터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꼭 필요하니, 안과학을 제대로 공부해보라"고 권유 받던 때가 엊그제 같았다.

 

영국 왕립수의대, 한국 삼성의료원 거치며 안과 수술에 한번 더 눈 떠 


학위를 받자마자 그는 영국 왕립수의대학(RVC, Royal Veterinary College)로 달려가 포닥(Post-doctoral researcher, 박사후연구원)으로, 또 귀국해선 삼성서울병원(당시 삼성의료원) 안과 연구원(Research Scholar)으로 첨단 안과 수술을 집중적으로 배웠다. 

 

 

그 때나 지금이나 영국 RVC는 세계의 수많은 수의대학들 중 단연 최고다. 안과 쪽은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수의사로선 행운이었다. 하지만 책임감도 컸다. 

 

“그 당시 영국은 대동물, 소동물 가릴 것 없이 안과 진료 수술이 엄청 많더라고요. 심지어 귀족들 말까지... 여기서 안과에 대해 진짜 눈을 뜬 것 같습니다. 삼성의료원에서 안과를 보는 시야도 훨씬 넓어졌고요.” 

 

귀국할 땐 해외의 안과 원서들, 사진 슬라이드들도 많이 모아왔다. 국내에선 누구도 갖고 있지 않던 전문 자료들. 

 

“2002년 서울대 수의대 교수로 부임한 이후로만 봐도 안과 진료만 20년 넘게 해왔네요. 그 전까지 치면 더 되고요. 국내 첫 안과 교수다 보니 공부도 정말 열심히 해야 했죠. 그 땐 누구에게 물어볼 사람도 없었잖아요?” 

 

초빙교수로 미국 아이오와대학, 위스콘신대학에서 미국 수의안과 현주소도 체험했다. 결국 영국과 미국 양쪽의 안과 핵심부를 모두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었던 셈이다. 

 

그렇게 나온 논문만 200여 편. 저명한 국제 저널에 실린 SCI(E)급 논문이 60%에 이른다.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 최다 수준. 미국 유럽 전문의들이 학회 등에서 그를 먼저 알아보고, 또 찾는 이유다. 

 

아시아수의안과학회(AiSVO) 회장(2011~2015)과 세계수의안과학회(ISVO) 회장(2017~2019)으로 세계의 안과 수의사들을 이끈 원동력이기도 했다. 한국 수의사로선 처음이었다.

 

수많은 논문 원천은 역시 임상 현장...지금도 연간 2천500여 케이스 치료


“외과 후배 교수들이 계속 들어오며 제 진료 범위도 점점 세분화되고 있어요. 그래도 전국에서 환자들이 찾아오니 안과 진료만으로도 연간 2천500여 케이스(초진 재진 포함)가 넘는 것 같아요.” 

 

 

환자를 직접 만나는 임상, 연구실에서 질환 기전과 치료 이후까지 고찰하는 학문, 두 가지가 선순환하며 서로를 견인해온 셈이다. 

 

그 사이 우리나라에도 아시아수의안과전문의(DAiCVO)가 9명으로 늘었다. 전체 25명 중 일본 10명에 이어 가장 많다. 

 

그가 첫 테이프를 끊은 2011년 이후 10년여 세월이 만들어 놓은 금자탑. 그는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단연 아시아수의안과학회"라고 했다. 

 

"우리나라 수의안과학이 재빨리 지금 궤도에 올라온 것은 정말 여러분들 노력이 더해진 결과죠. 남치주 교수님께서 길을 알려주고 인도하셨다면, 그 길을 함께 열어간 지동범 원장님과 유석종 원장님의 공도 큽니다." 

 

지동범 원장은 부산에서, 유석종 원장은 서울에서 안과 환자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하고 있다. 

 

훌륭한 후학들도 많다. 그에게서 배우고, 또 스스로 발전해갔다. 정만복, 강선미, 박영우, 안재상 박사 등. 이들 모두 아시아수의안과전문의다. 박신애(퍼듀대, ACVO), 김수현(UC Davis, ACVO candidate) 수의사는 미국에서 수의안과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됐다.

 

"증거 입각한 진료하되 결국엔 보호자와 한 마음 돼야"


서울대 수의대생들 사이에 그의 수업은 ‘명강의’로 소문나있다. 안과 질병의 시작부터 끝까지 명쾌하다. 핵심을 꿰뚫고 있어서다. 세계 임상의 주요 사례와 희귀 자료들까지 등장한다. 

 

 

그러면서 그가 입버릇처럼 해온 얘기가 있다. 

 

“정확한 진단에서 정확한 치료가 나온다. (심증이 아니라) 끝까지 증거에 입각한 진료(evidence based medicine)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동물은 기계가 아니다. 치료 예후가 기대치와 다른 경우도 나온다. 그럴 때일수록 정직하게 설명하고, 보호자들 마음을 읽으며 공감할 줄 아는 수의사 돼야 한다.” 

 

그건 바로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에겐 이제 두 가지 숙제가 남아있다. 녹내장과 각막이식. 수의계에서는 아직 정복하지 못한 난제들. 

 

“치료 시기를 놓쳐 결국 안구를 적출할 수밖에 없는 녹내장 환자들을 볼 땐 안타깝기 그지없죠. 각막이식 수술도 어려운 과제고요. 실험을 통해 치료법을 개발해내야 하는데, 동물실험 규제가 점점 세지고 있어요. 실험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으니... 하지만 어쩌겠어요? 그래도 한발 한발 나아가 보는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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