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타임즈】 개들끼리 싸우는 일명 '개싸움' 영상이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과거에는 '서열정리'로 간주되던 개싸움이 이제는 '동물학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해당 영상이 최근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추천 동영상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더욱 뜨겁다. 이 때문에 유튜브에서 '개싸움' 등 관련 영상은 검색 또는 자동 추천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개싸움 영상 동물학대 논란…견주는 "서열정리"
1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유튜브에 '진도개(이하 진돗개) 2마리 싸움'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영상이 논란에 휩싸였다. 황구와 백구가 싸우는 모습이 담겨 있는 영상을 본 사람들이 '동물학대'라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영상을 올린 견주 A씨는 "동물학대가 아닌 서열정리"라고 해명했다.
A씨에 따르면 토종 진돗개인 황구는 백구의 아빠다. 백구는 셰퍼드와 진돗개의 혼종이다. 영상에는 백구가 황구의 목덜미를 무는 등 격렬하게 싸우는 모습이 담겨 있다. 특히 황구만 목줄에 묶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A씨에 대한 비난이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해당 영상은 지난해 9월 올라왔다. 하지만 최근 유튜브에서 이 영상이 다수에게 추천돼 뒤늦게 논란이 되고 있다. 영상을 본 B씨는 "평소 강아지를 좋아해서 동물 영상을 자주 보는데 최근 이 영상이 갑자기 떠서 우연히 보게 됐다"며 "새끼 강아지들도 아니고 개들이 서로 물다 죽일 수도 있는데 아직도 서열정리를 이유로 개싸움을 하게 놔두다니 황당할 뿐"이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해당 영상을 본 누리꾼들도 "개들이 피터지게 싸우도록 놔두고 서열 짓는 거라 재미로 봐 달라니 어이가 없다" "지금 투견하는 거냐" "이걸 보라니 참 잔인하다" 등의 댓글을 달며 A씨를 질타했다.
또 다른 누리꾼들은 "억지로 말리면 평생 원수된다" "저렇게 하는 것이 맞다" "하얀 개가 겁만 주지, 죽일 마음은 없다" 등으로 A씨를 두둔하며 논쟁은 격화되고 있다.
논란이 계속되자 A씨는 지난 12일 유튜브에 '개 싸움 영상 해명'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동물학대 의도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들을 산에서 키우는데 목줄 채워서 산책도 하고 밥도 잘 준다"며 "개들을 사랑하지만 데리고 산책을 가다가 싸우는 모습을 봐서 서열정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방어적으로 싸우지만 흰 개가 착해서 죽일 정도로 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유튜브에 개싸움 영상이 많아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어 올린 것이고 개를 사랑하고 열심히 키우는 영상도 있다"며 "개를 직접 학대한 것도, 의도적으로 싸움을 시킨 것도 아니다. 같이 소통해 가면서 좋은 영상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서열정리 달라져야…환경·인식 개선 필요"
하지만 전문가들은 반려동물을 대하는 방식이 과거와 달라진 만큼 서열정리의 개념과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시골에서는 아직까지 개를 마당에 묶어 키우거나 반대로 풀어놓고 관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제는 양육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지형 씨티칼리지교육원 교수는 "개들끼리 싸워서 서열을 관리한다는 발상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며 "보호자라면 다견 가정에서의 규칙을 세우고 개마다 공간을 따로 만들어 저런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개싸움 영상 외에도 '셰퍼드 진돗개 합방' 영상도 올렸다. 서 교수는 이에 대해서도 "개들끼리 싸우고 나면 다른 개들한테도 예민해질 수 있다. 새끼를 낳아서 계속 이런 식으로 키울 거라면 중성화 수술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태희 씨티칼리지교육원 교수도 "서열싸움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굳이 가족끼리 싸움을 하게 놔두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개를 키우는 집에서 정말 서열을 따진다면 그것은 개가 아니라 먹이와 집을 제공하는 보호자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웅용 천안연암대 교수는 상황에 따라 견주가 개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사람과 달리 동물들이라 어느 정도 서열정리라고 할 수는 있다"며 "다만 목덜미를 세게 무는 행위는 위험한 상황이니만큼 보호자가 적극적으로 제재했어야 한다. 보호자가 서열 1위가 돼서 애초 싸움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개들도 성격 형성에 선천적, 후천적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개라서 다 싸우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성격이 달라지는 만큼 보호자의 역할과 사회 인식 개선이 중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태형 서울시수의사회 홍보이사는 "싸움을 계속 반복한 개들이 새끼를 낳으면 이기적인 유전자가 발현될 수 있다"며 "행동학적으로 보면 개들이 싸울 때 잘못 말렸을 경우 보호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싸우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제대로된 교육과 환경 개선 등을 통해 행동을 바꿔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직접 때리지 않아도 학대…방통위 제재해야"
A씨는 동물보호법상 학대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법조계에서는 정도에 따라 학대가 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현행법상 동물의 목을 매다는 등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동물을 도구 등 방법을 사용해 상해를 입히는 경우 징역 2년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동물학대 행위를 촬영한 사진 또는 영상물을 판매·전시·전달·상영하거나 인터넷에 게재하는 행위도 문제가 된다. 직접 때리지 않아도 투견과 같이 도박·광고·오락·유흥 등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혀도 안 된다. 동물의 사육·훈련 등을 위해 필요한 방식이 아닌데 다른 동물과 싸우게 하는 등 행위도 학대가 될 수 있어서다.
실제 지난 2019년 12월 창원지법은 자신이 기르던 개와 다른 개를 싸움시키고 다치게 해서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견주 김모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한 적도 있다.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는 "의도적으로 싸우도록 놔뒀다면 동물학대가 될 수 있다"며 "견주가 좋아하는 사람만 재미로 볼 수 있도록 올렸다고 하고 다른 개들을 자주 합사시킨 것을 보면 싸울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개들이 싸우는 영상을 올린 것도 논란이지만 유튜브에서 알고리즘으로 해당 영상을 추천했다는 것은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유튜브에서 개싸움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도 다수다.
업계 관계자는 "사회정서상 개싸움을 동물학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알고리즘 추천으로 원하지 않는데 영상을 보게 한 것은 유튜브가 방조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런 영상이 뜨지 않도록 추천 동영상에서 제외하거나 연관 검색어 삭제는 물론 방송통신위원회 등이 제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news1-100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