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억 원장은 우리나라 특수동물 진료의 선구자다. 국내에 관련 정보가 전무하던 1990년대부터 거북이 토끼 햄스터 도마뱀 등 '색다른' 동물들을 치료해왔다.
당시만 해도 강아지를 키우는 집도 그리 많지 않았고, 고양이 키우는 집은 더 적었던 시절. 하지만 그 때도 방에서 토끼나 햄스터를 키우는 이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들이 아플 땐 찾아갈 병원이 없었다는 것. 시름시름 앓다 죽는 걸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던 보호자들로선 가슴에 피멍이 들었다.
그가 서울 관악구 서원동에 한성동물병원을 개원한 것이 그 때. 1987년 수의대 졸업하고 처음 들어갔던 바이엘(Bayer) 제약회사에서 2~3년간 돼지와 닭, 소 키우는 농장들 다니며 컨설팅해주었던 게 밑천의 전부였다.
“양계장에 전염병이 돌 조짐이 보이면 비상대기조처럼 급히 달려가 현장에서 바로 부검을 하고, 진단을 내려야 했어요. 살균부터 약 처방, 주사까지 순식간에 결정하고 처리해야 하는 속도전이었죠."
또 당시 정부가 민물고기 키우는 가두리양식(내수면 어업)을 적극 권장하던 시절이어서 어류쪽도 많이 보게됐다. 꼭 필요한 경우, 항생제와 약품을 양식장에 대량 살포하는 방식.
개원을 하고 2년 쯤 지난 어느날,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연락이 왔다. 수족관 동물들 진료를 맡아달라는 것. 소 닭 돼지에다 어류까지 두루 다뤄본 그의 전력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다시 연결점을 찾은 셈이었다.
“63 수족관의 어류는 물론 물개, 바다표범, 수달, 거북, 악어, 펭귄, 다양한 종류의 파충류들까지 보기 시작했어요. 나중엔 고슴도치. 토끼 등도 전시했죠. 자연히 공부해야 할 양도 크게 늘어났어요. 그게 특수동물 진료의 세계로 저를 이끈 계기가 됐습니다."
스스로 개척해온 특수동물 진료의 길
하지만 당시엔 자료도, 자문 받을 곳도 없고, 경험도 부족했다. 모든 게 새롭고 신비한 경험들이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매 순간이 도전이었다.
그래서 컴퓨터를 배우고(하이텔 천리안 시절), 아마존에 도서를 주문하고, 외국 사이트와 교재를 번역하며 한 발 한 발 나아갔다. 특수동물, 그 자체가 신기한 아이템이다보디 방송 출연도 많았다.
"어느날, 거북이 보호자가 찾아왔어요. 살펴보니 거북 목에 혹이 있는데, 그게 종양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가 없는 거예요. 하는 수 없이 째서 보니 구슬 같은 것이 나왔어요. 세균 배양을 해보니 종기였어요."
사람에게는 묽게 나타나는 종기가 거북에게는 딱딱한 구슬처럼 나오는 것이었다.
나중에 발견한 것이지만 책에선 '치즈 형태의 농양'이라고 표현하고 있었지만, 그가 본 실제는 책과도 달랐다.
반면 토끼, 햄스터에선 염증이 진흙처럼 나온다. 문제는 그 염증이 주변 근육과 뼈까지 녹여버리는, 매우 고질적인 질병이라는 것. 치료도 잘 안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거북의 개복 수술이었다.
"보통의 메스로는 두껍고 딱딱한 배를 열 수가 없는 거예요. 결국 커터로 네모나게 잘라냈죠. 수술을 마친 후엔 다시 덮어야 하는데, 이것도 골칫거리. 보통의 수술 바늘과 실로는 꿰맬 수조차 없는데다, 물에서 살아야 하는 거북이잖아요? 하는 수 없이 접착을 한 후에 치과에서 사용하는 레진으로 방수까지 해야 했습니다. 아주 특이한 수술을 해본거죠."
페럿(ferret) 항암치료도 기억에 남는다. 페럿은 체구가 작아 흉강(가슴)이나 복부에 종양이 생겨도 메스를 대기기 쉽지 않다. 그래서 주사기 바늘로 조직을 조금 떼내는 '미세 흡입 검사'(fine needle aspirate)로 판단을 해야 했다.
종양으로 판정이 나서 항암치료를 했고, 치료는 성공적이었다. X-ray 상으로 더 이상 종양이 보이지 않았던 것. 문제는 6개월 후였다. 다시 재발을 했는데, 매주 대전에서 올라와 치료를 해야 했던 보호자로선 상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평균 수명이 사람의 1/10 밖에 안되는 페럿은 암 재발도 그만큼 더 빨리 일어난다는 걸 그 때 처음 실감했어요. 사람에게선 수술 후 5년 생존률로 완치 여부를 판단하는데, 페럿은 몇 개월만에도 재발할 수가 있다는 거죠. 보호자를 이해시키기는 과정도 난관 중의 하나였어요."
"이젠 후배들에게 제 경험 다 전수해주고 갈 것"
특수동물 진료는 현재 가장 빠르게 확장하고, 또 진화하는 분야들 중의 하나다. 특수동물 애호가들이 빠르게 늘고 있는데다, 특수동물 종류도 엄청 다양해지고 있다. 수족관만 해도 지금은 서울 코엑스, 부산 해운대, 제주, 2012엑스포를 했던 여수 등 곳곳에 생겼다.
이런 추세 때문인지 특수동물을 진료한다는 동물병원들도 어느새 많아졌다.
이곳 저곳에서 권 원장을 부르는 일이 많아진 것도 그 때문. 대학에서도, 다른 병원 원장들 공부모임에서도 특수동물 진료를 커리큘럼으로 넣어 그에게 강의 요청을 해왔다.
“임상 수의사들의 경우, 하루 일과 끝내놓고 밤에 모임을 해요. 낮에는 시간이 없으니까. 그래서 제주도나 부산, 광주 등에서 비행기 타고와 강의 듣고는 다음날 내려가는 이들도 많았죠."
그렇게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전파해온 게 벌써 10년이 넘었다. 가르치기만 한 게 아니다. 다른 수의사들의 날카로운 질문을 받으며 그 스스로도 엄청나게 많은 공부가 됐다.
“체중이 적게 나가는 동물들(새, 햄스터, 저빌, 슈가글라이더 등)일수록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야생성이 강한 동물일수록 질병이 없는 것 같이 위엄을 보이는 '마스킹 현상'(masking phenomenon)도 심하구요."
질병이 이미 많이 진행된 경우라면, 엑스레이 촬영 정도의 가벼운 처치에 목숨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정기검진을 통해 질병을 초기에 발견하는 것이 최선의 대비책일 수 밖에 없다.
"특수동물은 종류도 다양하지만, 체중도 2g에서부터 많게는 200kg까지 나갑니다. 그에 맞춰 마취부터 치료방법까지 차이가 많아요. 진료 비용도 그래서 무척 다르고요."
그런 점에서 특수동물 분야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하지만 동물병원에서의 진단과 치료, 그리고 보호자들 인식에 이르기까지 특수동물 임상현장은, 오늘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글= 기자 윤성철 박태영, 사진= PD 송창호